추석이면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명절 연휴에는 대표적인 문화 관광명소인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의 입장료가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가을이라 단풍으로 물든 고궁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서울에서 명절을 맞아 찾아가기 쉽고, 서울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아름다운 궁궐인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으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하는 명절 나들이 전에 궁궐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알고 가면 더욱 값진 여행이 되겠지요.
조선의 법궁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세운 조선의 법궁입니다. 법궁이란 임금이 사는 궁궐을 뜻하는 말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지금의 북악산인 백악산 아래에 조선 왕조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을 지었습니다. 경복궁이란 이름은 ‘큰 복을 누리며 번성하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어 올린 이름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으뜸 궁궐답게 풍수지리가 매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뒤에는 북악산이 서 있고, 앞에는 청계천과 한강이 흐릅니다. 건물의 배치도 엄격한 규율에 따라 앞쪽은 임금이 나랏일을 보는 곳으로, 뒤쪽은 왕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구분했습니다. 중요한 전각과 문은 남북 직선 축에 맞추어 배치했고, 좌우대칭의 안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요 건물로는 조선의 왕실을 상징하는 건물이자 임금의 즉위식과 같이 큰 행사가 열렸던 근정전, 임금이 나랏일을 보던 곳인 사정전, 임금과 왕비가 생활하던 곳인 강녕전과 교태전이 남북으로 늘어서 있고, 대왕대비가 생활하는 전각인 자경전,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누각인 경회루 등이 동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방에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남쪽에는 광화문, 북쪽에는 신무문,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이 있습니다.
경복궁에서는 2024년 가을을 맞아 다양한 축제를 진행합니다. 경복궁 별빛 야행이 10월 6일까지 진행됩니다. 은은한 별빛 아래 경복궁 소주방에서 국악 공연을 즐기며 수라상을 맛보고 전문해설사와 함께 경복궁의 야간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당첨자 예매 기간이 끝나고 잔여석 예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실제 임금이 먹었던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유료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경복궁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서 역사를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흥미로운 체험으로 한국 문화를 더 깊은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비운의 역사를 담은 덕수궁
덕수궁은 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조선 시대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작은 궁궐입니다. 원래는 월산대군 이정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직후 선조, 광해군 때 임시 행궁으로 쓰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한양 안에 있던 모든 궁궐과 종묘 등이 소실되었습니다. 의주로 피난을 떠났었던 선조는 1593년에 한양으로 돌아왔지만 궁궐이 모두 소실되어 머무를 장소가 없었고, 이에 조선 왕실은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월산대군 저택만을 행궁으로 삼기에는 공간이 협소하여 저택 주변의 민가를 행궁 권역 안에 포함시켰고, 행궁 안에 있어야 할 관청들도 처음에는 행궁 밖에 두었다가 점차 면적을 넓혀 모두 행궁 안에 들게 했습니다. 선조는 1593년 10월 이곳을 행궁으로 삼은 뒤 1608년 2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으며,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의 서청(오늘날의 즉조당)에서 즉위식을 가졌습니다. 광해군은 즉위한 뒤에 행궁을 넓혀 지금의 정동 1번지 일대를 대부분 행궁의 경내로 만들었고, 이와 더불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등을 차례로 중건했습니다. 1610년 광해군은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 이듬해 정릉동 행궁의 명칭을 '경운궁'으로 고쳤습니다. 그 뒤로 경운궁은 한적한 별궁으로 다시 축소되었습니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896년 고종 33년의 아관파천 이후입니다. 고종 32년인 1895년에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고종 34년인 1897년 2월 25일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 환궁하게 되는데, 원래 머물렀던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아마도 정동 일대에 러시아·영국·미국 등 강대국의 공사관이 있어 고종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호를 요청하기 쉬울 것이라는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07년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고, 이어 고종의 아들 순종이 돈덕전에서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해 11월 13일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덕수궁은 태황제 고종이 거처하는 궁궐이 되었고,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경운궁의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습니다.
원래 덕수궁 영역에는 덕수초등학교, 옛 경기여자고등학교 자리, 미국대사관 서쪽 지역 등이 포함되었으나 비운의 우리 근대사와 함께 궁궐 영역을 여러 대사관과 개인들에게 넘겨주어 현재의 영역은 2만 평에도 못 미칠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덕수궁을 둘러본 후 정동길과 고종의 길을 걸으며 당시의 역사를 되새겨 봅니다. 덕수궁과 근처의 건물들의 모습을 보며 왜 덕수궁이 다른 궁궐보다 규모가 작은지, 왜 덕수궁은 조선의 목조 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지, 나라를 잃은 왕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선왕조 후기의 비운의 역사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겁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이 경복궁의 동쪽에 이궁으로 지은 궁궐입니다.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지은 궁궐을 말합니다. 창덕궁의 동쪽으로는 창경궁이, 동남쪽으로는 종묘가, 서쪽으로는 정궁인 경복궁이 위치해 있습니다.
1392년 조선 왕조가 건국된 후 새로 지은 경복궁에서 왕자들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자 개경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태종 5년인 1405년에 한양으로 다시 천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 태종은 무악 아래 새 도성을 건설하고 싶었지만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한양으로 재천도 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태종은 정궁인 경복궁을 비워두고 경복궁 동쪽 향교동에 궁궐을 하나 새로 지어 '창덕궁'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창덕궁은 1411년에 조성한 진선문과 금천교, 1412년에 건립한 궁궐의 정문인 돈화문에 이어 여러 전각들이 차례로 들어섰고, 세조는 즉위하면서 인정전을 다시 짓고 궁궐의 각 전각 명칭을 새로 정하며 궁궐의 모습을 서서히 갖췄습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덕궁 역시 다른 궁과 더불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궁궐의 재건은 엄두도 못 내다가 선조 38년인 1605년부터 재건 준비를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인 1609년 10월에 인정전 등 주요 전각을 거의 복구합니다. 영조 52년인 1776년 9월에는 후원에 규장각이 건립되었으며, 정조 6년인 1782년에는 인정전 뜰에 품계석이 설치되었습니다.
현재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왕이 정사를 보던 구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구역, 동쪽의 낙선재 구역, 그리고 북쪽 구릉 너머 후원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궁궐의 중요 건물은 유교 예법에 맞게 중심축을 형성하며 도형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야 하지만,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등은 중심축 선상에 배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창덕궁이 정궁인 경복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으로,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한 데서 생긴 결과입니다. 평지에 세워진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북쪽 응봉에서 흘러나온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자리를 잡았기에 궁궐을 이루는 건물들이 일정한 체계 없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질서해 보이는 건물 배치는 주변 구릉의 높낮이뿐 아니라 그 곡선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복궁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궁궐의 아름다움과 위용은 경복궁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납니다. 특히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후원은 조선 시대 궁궐 후원 가운데 가장 넓고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창덕궁의 후원은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서 조화롭게 건물을 배치해 멋스럽습니다. 후원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분위기는 제각각 독특한 특색을 자랑하며, 계절마다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많은 방문객의 사랑을 받는 궁궐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왕이 거처했던 궁궐입니다. 창덕궁 역시 일제 강점기에 많이 훼손되었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궁궐의 건축물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고요하고 그림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